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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09

Star/별자취 2019. 3. 9. 16:33

  자취방 계약이 끝나간다. 이곳에서 보낸 시간이 1년이 되었단 사실보다 더 놀라운 것은 아직도 현관문을 나설때면 이따금 어색함과 낮설음을 느낀다는 것이다. 현관문을 닫고, 엘레베이터 앞에 서면 이제 뭘 할 차례지 하며 그대로 굳어버리는 것이다. 이 다음엔 뭘 해야 하더라 하는 생각과 함께 나는 지금 낮선 장소에 있단 느낌을 받는다. 평소 익숙하게 집을 나서던 행동을 돌이켜보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 무엇을 어떻게 했는지는 떠오르지 않는다. 5초간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을 뿐이다. 누구에게나 1년은 참으로 긴 시간일테지만 나에겐 1년이 짧은 시간인 것 같다. 적어도 집을 나서는 행동에 완전히 익숙해지기에는.



  지금 지내는 자취방을 고르던 때에는 시간적 여유가 많이 부족했었다. 갑자기 내린 결정에 가장 숨가쁘게 달려야 했던건 역시 나였다. 어쩌면 시간의 여유를 두고 방을 골랐었더라도 밤 늦게 노래 부르는 사람과 건물이 무너져라 문을 발로 차듯 닫긴걸 확인 하는 사람, 그리고 변기에 물티슈를 버리는 사람을 완벽히 피해가긴 어려웠을 것이다. 검은색 커튼이 하늘을 덮은 순간 가장 빛나는 것은 달이 아닌 모텔 네온사인이었고 내 방에 마지막 짐을 내려놓으며 창 너머로 전광판을 바라보는 나는 슬프거나 전망이 안좋다거나 하는 생각을 하지는 않았다. 평소 집에선 볼 수 없었던 새로운 광경에 내가 이곳에 왔구나 하는 사실을 확연히 받아 들일 수 있었고 약간 흥분되기까지 했다. 새로운 장소에서 새로운 나날이 펼쳐지겠구나, 부풀어 오르는 기대감으론 가스 난방이 제한되었던 첫날 밤을 따스하게 보낼 순 없었지만 마냥 새롭고 들떠있었다. 어르신들 말로 마냥 명량할 따름이었다. 밤이 깊어질수록 모텔 전광판들이 존재감을 드러내고, 일주일 넘게 구급차, 소방차 사이렌 소리가 들리기도 하며, 친구 한 명 있을 뿐인 낯선 곳에서의 생활도 이제 일주일 정도만 남았다.



  계획을 철저히 세우는 편은 아니지만 계획없이 무턱대고 들어대는 편도 아닌 나는 아무 계획없이 이사를 결정했다. 이런 저런 사유로 이사를 꺼리다가 무작정 이사하겠다고 통보하고 집을 나왔다. 내가 이사할 수 있도록 경제적인 부담을 감당할 수 있었기에 망정이란 생각을 한다. 만약 경제적 여건이 되지 않았더라면 이사는 한참 늦어졌을 테니까. 어찌되든 집 밖으로 나오긴 했겠지만 과연 그 생활이 '명량'할 수 있었을까. 집 밖으로 나오는게 어려운 일도 아닌데 뭐 그렇게 오래 걸리고 심각하게 생각하냐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누구에게나 말 못할 사정이 있는 것이 우리네 인생인 만큼 나 역시 그 사정을 극복하느라 심각할 수 밖에 없었다고 변명하고 싶다. 



  이제 1년을 다 채우고 이사를 간다. 지금의 방과 같은 계약 조건이지만 나은 점이 있다면 방이 조금 더 넓어 진다는 것이다. 이곳보다 더 크게 번화한 곳으로 이사함을, 더 큰 방으로 옮겨감을 축하하며 어떤 나쁜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미래지만 어떤 좋은 일이 일어 날지도 모르는 미래이므로 또 한번의 자취 생활에 있어 시작을 즐겁고 힘차게 하고 싶다. 이곳으로 이사오며 세웠던 계획은 처참하게 실패하고 말았고 차선책 역시도 별 효과를 보지 못했기에 별 소득없이 끝난 1년 간의 자취 생활임에도, 용기와 자신감, 여유와 실패를 통한 새로운 경험을 얻었기에 이토록 즐겁고 앞날이 기대되리라 생각한다.


그렇게 나는 현관을 나서는데 익숙해지기도 전에 방을 옮기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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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tarbou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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